[현장에서]'애널리스트 제목소리 내기' 총대 멘 금감원

송이라 2016. 5. 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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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이라 기자] 주식투자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좀처럼 ‘팔라’는 의견을 내지 않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거대 기업들의 자금을 유치해야 하는 증권사는 그 기업 상황이 나쁘다는 의견을 쉽게 낼 수 없다. 돈을 쥐고 있는 기업은 수가 틀리면 해당 증권사에서 자금을 빼내면 그만이지만 그 돈을 굴려서 먹고 사는 증권사는 한 푼이 아쉽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특정 대기업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냈더니 그 다음날 바로 머니마켓펀드(MMF) 계좌에서 1억원을 빼갔다”고 했다. 증권사와 상장회사간 관계를 여실히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상장사의 ‘갑(甲)질’은 종종 도마 위에 오른다. 지난해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현대백화점(069960)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백화점 임원에게 다짜고짜 리포트를 내리라는 지시를 받았고 올 들어서는 하나투어(039130) 목표주가를 20만원에서 11만원으로 낸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하나투어의 기업 탐방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수조원대 적자를 낸 대우조선해양(042660)을 분석한 수많은 증권사 중 ‘매도’를 제시한 곳이 한 군데도 없었던 건 ‘웃픈’ 사례다.

이러한 문화를 개선코자 금융감독원이 총대를 멨다. 지난 3일 금감원은 상장사협회와 코스닥협회, 금융투자협회, 금감원을 주축으로 하는 4자간 정기협의체를 구성해 윤리규정을 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르면 상반기 중 발족할 예정이다.

과거에도 이런 시도가 없었던건 아니다. 금감원은 지난해 하반기에도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과의 협의체를 구성, 분기별로 회의를 가져왔다. 딱히 결과물은 없었다. 증권사들에게 ‘매도’ 의견을 얼마나 썼는지 묻는 투자의견 비율 공시제도도 시행했다. 이 제도는 시행된지 반년이 지났지만 국내 증권사들의 매도리포트는 여전히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본질은 갑을 관계 문화인데 애꿎은 증권사에 매도 리포트 비율을 공시하라고 강요해봤자 될 일이 아니다. 흡사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가서 눈 흘기는 꼴이다.

이같은 지적에 이번에는 금감원이 좀 더 적극적인 개입을 하겠다고 한다. 상장사와 증권사간 껄끄러운 일이 생길 때 금감원이 중간에서 매끄럽게 해결될 수 있도록 중재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오랜 시간에 거쳐 투자문화가 정착된 영미권은 상장사들이 우리처럼 대놓고 갑질을 할 수 없는 구조다. 만약 그런 경우가 생겨도 대형 투자은행(IB)들간에 협의해 아예 그 상장사를 분석 대상에서 제외시켜버린다. 매도 리포트 냈다고 돈 빼가는 상장사는 개념없는 기업 취급 당하기 일쑤다.

이러한 문화가 우리나라에 정착될 수 없는 건 대기업이 ‘절대 갑’인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최근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이 이례적으로 단결해서 상장사의 횡포에 적극적으로 대항한 게 내심 반가우면서도 그 대상이 시가총액 1조원대에 불과한 중소형사 하나투어(039130)라는 점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금감원의 새로운 시도가 부디 공염불에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송이라 (ras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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