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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빵·발효빵·허브빵 … 지금은 밥빵 시대 중앙일보 | 이소아.박종근 | 2012-06-30 00:42:03
[사진 박종근 기자, 소품='패션 5']
올 상반기 빵 시장은 유례없이 살벌했다.

 대통령이 '대기업들이 왜 순대나 빵같이 서민들 장사까지 노리느냐'고 지적한 것을 시작으로 '재벌 빵집 vs 동네 빵집'이란 대립 구도가 전면에 부각됐다. 리치몬드 제과점(홍대), ABC뉴욕제과(강남역) 등 '추억의 빵집'들이 임대료 때문에 문을 닫아 아쉬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미 빵 시장은 두 차례 대전을 치렀다. 1차전은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말까지다. 동네 빵집들이 급성장해 공장에서 양산된, 일명 '봉지빵'의 소비가 크게 줄었다. 반면 2000~2010년은 파리바게뜨·뚜레쥬르 같은 프랜차이즈형 제과점이 번성했다. 바야흐로 빵 시장은 3차전이 한창이다. 식사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빵'들이 급부상하면서 그 어느때보다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소비패턴이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시장을 '대기업' 대 '동네 빵집'의 싸움으로만 가를 수 없는 이유다.

 빵 먹을까, 밥 먹을까

 지난 주말 서울 목동 현대백화점 지하 식품관. 베이커리 '베즐리'에 들른 주부 이혜진(36)씨는 캄파뉴(시골빵)와 호밀빵을 집어 계산대로 가져갔다. 각각 3800원. 여기에 한두 개를 더 얹으면 금세 1만5000원이 넘는다.

 "일주일에 두세 번 기본빵이나 식사빵을 사가요. 가격이 좀 비싸지만 애들이랑 끼니로 먹는 거니까요."

 식사빵?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말 그대로 '밥 대신 먹는 빵'이다. 달지 않고 맛이 담백하다. '밥빵'의 인기는 달라진 식문화를 그대로 대변해 준다. 비단 백화점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입소문이 자자한 동네 빵집들도 들여다 보면 주력 상품은 기본빵과 몸에 좋은 발효빵이 많다. 홍대 근처 '폴앤폴리나'의 블랙올리브빵과 허브빵, '쿄베이커리'의 건포도식빵, 한남동 '악소'의 호밀빵과 잡곡빵, 이태원 '베이커스 테이블'의 뮈슬리빵(견과류와 오트밀 등 곡물로 만든 독일식 빵) 등이 대표적인 예다.

 빵의 위상 변화는 통계에서 잘 드러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 1명은 33.4㎏의 밀과 71.2㎏의 쌀을 소비했다. 쌀 소비량이 밀보다 두 배 이상 많지만 역대 최저치라 비상이 걸렸다. 반면 제빵 출하량은 2006년 27만5000t에서 2010년 37만4000t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매출액도 1조9700억원에서 3조5000억원으로 약 78%나 증가했다. 이런 추세를 먼저 반영하고 나선 것이 프랜차이즈형 제과점과 백화점 베이커리들이다.

 파리바게뜨는 지난해 969명의 소비자를 조사한 결과 '밀 본연의 자연스럽고 쫄깃한 맛'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답을 얻었다. 그래서 내놓은 상품이 '먹으면 먹을수록 순수秀담백'식빵이다. 신세계백화점 베이커리 '달로와요'도 시장 조사를 토대로 올 들어 건강빵 종류를 30% 정도 늘렸다. 설탕이나 기름기 없이 주(酒)종, 건포도종, 호밀종 등으로 숙성시킨 발효빵과 견과류가 들어간 잡곡빵들이다. 매출은 약 30% 늘어났다. 마케팅 담당자인 김나현 대리는 "건강빵이 실제로 주식 개념으로 직결된 건 지난해부터"라며 "빵 한 덩이에 7000~8000원이면 비싼 건데도 가격 저항은 예전보다 덜하다"고 말했다. 식문화 자체가 변해가는 과정이라 수요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프랜차이즈 빵집들 "경쟁논리에 충실"

 김서중 대한제과협회 회장은 "요즘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며 입을 열었다. "동네 제빵사들은 최소한 20~30년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압박해오니 버틸 재간이 있나요. 4~5년 전만 해도 제과점을 차리면 힘은 들어도 식구들 밥은 먹고 살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부업으로 택시 운전이라도 해야 할 판입니다. 30년을 빵만 구웠는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실력 있는 동네 빵집들은 외부에서 압력만 넣지 않으면 절대 안 죽습니다."

 여기서 외압이란 'OO브랜드로 빵집 간판을 바꾸라'는 제안이다. 반죽을 다 해서 배달해 주니 빵을 몰라도 되고 필요한 인력도 훨씬 적다. 마케팅이 유리하다는 장점을 든다. 제과협회 측은 "지금이야 사회 여론 때문에 잠잠하지만 간판을 안 바꾸면 바로 옆에 빵집을 내겠다고 압박하거나 건물주와 입을 맞춰 임대료를 올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많은 동네 빵집이 자취를 감췄다. 한국을 방문한 일본제과협회 관계자들이 "어떻게 한국은 거리에 보이는 빵집 이름이 다 똑같으냐"고 의아해할 정도다.

 대한제과협회에 따르면 자영 제과점은 8034개(2007년)에서 5184개(2011년)로 35.5% 줄었다. 반면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 등 프랜차이즈형 제과점은 3489개였던 것이 5290개로 51.6%나 늘었다. 제과명장으로 꼽히는 서정웅 코른베르그과자점 대표마저 "(제빵업계에서)프랜차이즈는 이미 대세가 됐다"고 한 적이 있다.

 대기업들도 할 말은 있다.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SPC그룹 관계자는 "우리도 삼립식품이란 작은 업체로 시작해 공장 짓고 일본에서 기술자 불러 배우면서 한 단계씩 성장해 왔다"며 "매장을 많이 늘린 것은 업계와 경제상황이 맞물려 돌아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97년 CJ푸드빌의 뚜레쥬르가 등장하면서 경쟁자로부터 자사 브랜드와 점주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매장 수를 늘렸다는 얘기다. 정부도 IMF 외환위기 이후 실직자가 쏟아지자 프랜차이즈 제과점이 일자리를 창출한다며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최근 불거진 '골목 상권 장악' 이슈에 대해서는 상생 차원에서 책임감을 느낀다는 입장이다. SPC그룹 홍보팀 현주엽 차장은 "지난해 회사 자체적으로 8월 동반성장 정책을 발표하고 지금은 국내 매장 확장을 자제하고 해외 진출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중국·미국·베트남 등지에 110여 개의 매장을 열었으며 내년엔 인도와 중동에도 진출할 계획이다. 뚜레쥬르 역시 중국과 동남아 등지에 매장을 확대하고 있다.

3차전은 어떻게?

 우리나라 빵의 역사는 100년이 훨씬 넘는다. 구한말인 1880년대에 언더우드나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빵을 구웠고 1902년 서양식 호텔 '정동구락부'에서는 '면포(麵包)'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빵이 팔렸다. 특히 카스텔라는 '눈처럼 희다'는 뜻에서 '설고(雪 < 993B > )'라 불리며 큰 인기를 누렸다. '상미당(SPC그룹의 전신)'을 비롯해 고려당·뉴욕제과·태극당이 생겨난 게 1945년이니 빵 시장도 강산 따라 5~6번은 변했을 세월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유형별로 세 가지 트렌드가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창문을 통해 내부가 보이는 '윈도 베이커리(개인 빵집)', '프랜차이즈형 제과점', 마지막으로 '카페형 제과점'이다. 모두 그 전 단계 시장이 성숙하거나 포화상태에 이르렀을 때 나타났다. 지금은 카페형 제과점, 즉 카페와 베이커리가 합쳐진 빵집이 세를 불려가는 단계다. 2000년대 후반부터 급속도로 퍼져나간 커피·브런치(brunch)·디저트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시장의 키워드는 재료(원료)의 고급화와 다양성(개성)이다. 빵이 식탁 위에 오르는 빈도가 높아지면서 유기농·웰빙·친환경 원료가 한층 중요해졌다. 또한 시장 전체로는 다양성이, 개별 빵집들에는 전문성과 개성이 요구되고 있다. '식빵은 A집이, 디저트 케이크은 B집이 잘한다'며 인기를 얻고 있는 동네 빵집들은 오히려 시장의 '승자'다. 더욱이 '카페'란 개념이 '휴식공간' '장인정신' '고급 부티크' 등으로 확장되면서 '내 집만의 맛과 특성'을 내세운 빵집들이 더욱 경쟁력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가 찾는 빵으로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각오는 동네 빵집이나 프랜차이즈나 마찬가지다. "잘하는 빵집은 살아남고 못하는 빵집은 망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외압이 없는 공정한 경쟁이어야죠. 홍대나 서래마을 등에 독특한 개인 빵집들이 생기는 건 좋은 현상이에요. 소비자 선택권을 늘려주니까요."(김서중 회장) "빵 사업은 '감동의 사업'입니다. 미각적·시각적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방향으로 진화 중이죠. 저희는 이런 소비자 요구에 맞춰 700가지가 넘는 빵과 디저트를 개발하고 있습니다."(SPC그룹 이성종 상무) "상수동 쪽에 정말 맛있는 빵집이 있는데 일요일에 문을 닫아서 토요일이면 꼭 가요. 빵만 맛있으면 동네 빵집이든 호텔 빵집이든 전혀 상관없어요."(직장여성 박은진씨) 향후 빵 시장의 승부는 어떻게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이를 만족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이소아 기자 < lsajoongang.co.kr >
이소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박종근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msn.com/jokepar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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