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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리먼 때보다 더 나쁘다'…IPO 시장 한파 SBS | 정호선 기자 | 2012-06-05 16:36:07
그리스발 위기가 전 세계 경기둔화로 전염될 조짐을 보이면서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식시장이 급속히 위축되면서 상장을 통한 기업공개(IPO)시장이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올 들어 상장한 기업은 10개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 30곳의 기업이 상장했던 것의 3분의 1 수준이다.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였던 2009년 1월에서 5월까지 31개 상장이 이뤄졌던 것과 비교하면 그때보다 상황이 더 열악하다고 볼 수 있다. 1월부터 5월까지 주식공모를 통한 자금조달 규모는 747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무려 86%가 급감했다. 같은 기간 이뤄진 유상증자 역시 88%급감한 5441억 원에 머무는 등 이래저래 기업들이 주식시장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기능이 떨어지는 추세다.

IPO 시장 침체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시세 자체가 부진하기 때문. 신규기업이 상장할 때 기준가격은 동종 업계 주가를 기준으로 가치평가를 통해 매기게 되는데 시장 상황이 어렵다보니 기대하는 몸값을 받지 못할 바에야 상장을 연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경기 부진 때문에 기업실적이 예상치에 미치지 못하면서 자체적으로 상장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경우도 많다.

통상 하락장에서는 특정회사가 IPO하거나 유상증자 할 경우 자체 기업가치보다 가격이 낮게 책정되기 마련이다. 결국 주식시장이 침체되면 공모가격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기업들이 상장을 통해 조달하려는 자금규모가 축소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장의 움직임은 변동성이 너무 커서 정상적인 예측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대어급 IPO가 분위기를 바꿔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현재 현대오일뱅크, 산은금융지주, 미래에셋생명, 카페베네 등이 꼽히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상반기 상장은 물 건너간 상황이다. 게다가 중소기업들의 상장무대인 코스닥 시장이 극도로 소외된 점도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 심사가 강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거래소는 경영투명성과 재무안정성 뿐 아니라 사업성까지 심사 요건을 강화해서 따져보고 있는데, 이러다보니 지난해 5월까지 상장예비심사에서 탈락한 기업이 2곳밖에 없었는데 올 들어서는 벌써 5곳이 탈락하면서, 증시 급락과 맞물려 의도하지 않게 IPO에 찬물을 부은 격이 됐다.

하지만 얼어붙은 IPO시장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IPO시장도 위축되긴 마찬가지다. 특히 미국 증시의 기대감을 한껏 고조시켰던 페이스북의 주가가 상장 2주일 만에 공모가 대비 26% 하락하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고 가뜩이나 부진한 IPO에 더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시장에 상장된 주식들의 IPO후 1년간 주식동향을 보여주는 블룸버그 IPO인덱스는 페이스북 주가 급락으로 인해 지난달 15%나 하락했다. 이는 2008년10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 이후 월별 기준으로 가장 많이 하락한 것이라고 한다.

상장 후 페이스북의 부진한 주가 흐름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건 상장 건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페이스북 상장 이후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 13건의 IPO가 연기되거나 철회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에서는 페이스북 상장 이후 지금까지 아예 IPO가 한건도 이뤄지지 않았다.

시장 관계자들은 "페이스북 주가가 급락한데다 유럽경제의 불안 등으로 인해 투자자들의 심리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장래,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에 따라 가치를 매기는 IPO과정에서 그동안 너무 큰 기업 가치를 부여하는게 비이성적이었다는 걸 투자자들이 깨닫기 시작했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만일 IPO상의 과도한 가격 거품이 있다면 줄여나가는 것이 부정적인 일만은 아니다. 문제는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들의 자금조달 여력이 갈수록 쪼그라들 경우, 불황이 더 심화됐을 때 기업들이 운신의 폭이 좁아져 외부 충격에 약해지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이다.

게다가 현재 주식이 아닌 회사채 시장에서의 자금조달도 쉽지 않다.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현상 속에 미국채 등 우량국 국채 가격이 급등하면서 회사채보다는 국채에 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당분간 경기 둔화, 저성장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선 기업 실적이 단기간에 큰 폭으로 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주식시장을 통한 기업의 자금조달은, 증시에 불안심리가 잠잠해지고 상승기에 접어들기 전까진 위축되고 어려워질 전망이다.
정호선 기자 hosun@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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